한국에서 캐나다를 오면 어디서 살지를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누구 아는 사람이 있어 그곳을 찾아가야하는 것도 아니고 오라는 사람도 없고, 결국 캐나다 전도 사다 보면서 대충 갈곳을 살펴봅니다. 일단 캐나다가 겨울에는 무척 춥다는 말을 들었고, 토론토가 유명한 중심도시라고 들어서, 방향을 일단은 온타리오주로, 그리고 토론토 아래쪽인 좀 따뜻한 곳으로 잡자하여 근처의 중소시로 찾아보았습니다. 쭉 손가락을 가르다보니 OAKVILLE라는곳이 보이더군요. "옥빌" 그럼 나의 마을이네하는 생각이 순간 들더군요. 전혀 생소한,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지만 나의 이름이 "옥"으로 끝나는데 "옥 빌리지=옥빌"이니 나보고 오라는 싸인같았습니다. 대도시는 서울살이 오래했으니 접어두고 캐나다에서는 전원도시같은 곳에서 좀 살아보자 싶었던 이유도 있고요. 캐나다에서 만난분들이든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많은 묻는 질문중에 하나가 "왜 옥빌을 선택하셨냐"는 질문인데 거창한 이유도 없이 이렇게도 간단히 결정을 했다고 하면 그냥 웃어버리더군요. 나름 저에세는 이게 우주의 싸인같은 것인데요. 그래도 방문한 적도 없으니, 막연히 처음 생각에 그곳의 모습은 아마 대도시가 아니니, TV에 나오는 시골의 풍경처럼 집이 한두채씩 드문 드문 있는 마을을 마음에 염려해 두었었습니다. 와서보니 집들이 촘촘한 주거지역이더군요.심지어 땅덩어리가 엄청 크다는 그 말과는 다르게 집들이 다닥다닥붙어 있어 창문으로 조망건을 고려해야 할 정도의 도심(?)이었습니다.
좀더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여 인터넷으로 살고자하는 옥빌이라는 곳을 찾아보니 몇개의 싸이트가 나오고 그 중 좀 친숙하게 보이는 한국사람을 찾아 연락을 하여보니 현재 옥빌에서 현재 살고 있다고 하여 몇가지 궁금한 것을 물으면서 리얼터(부동산중개인)를 추천을 받습니다.
외국에 와서 집주소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비행기에서도 거주 주소를 기본적으로 적게 된것처럼, 뭐든 행정신청을 하고 만들려면 주소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우리처럼와서 모텔에서 숙박을 하는 사람으로는 관련 우편메일을 그곳에서 받아주지 않으므로 참 당황스럽습니다. (영화같은데서 보는 좋은 별다섯개짜리 호텔은 그게 되겠지만요..) 아이들 학교를 등록하고 싶어도, 은행에서 카드를 만들든지, 운전면허증을 만들든지, 보험증을 신청하든지, 주소가 없으니 이 모든 행정일을 시작도 하지 못합니다. 누구 친척이나 가족의 주소를 대리로 정착까지 사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지하게 큰 힘이 될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알고보니 우린 무식하여 용감했습니다.
그리하여 도착 바로 다음날, 추천을 받은 리얼터에게 연락을 하고 사무실로 찾아가 봅니다. 말하자면 캐나다에서 처음 만나는 한국사람인거지요. 만난지 10분만에 대단한 이력과 자랑할만한 가족상황을 가졌다는 자랑으로부터 시작을 하여, 사람을 참 불편하게 하는 솜치를 가진분이더군요. 캐나다에 온지 한 30여년이 되셨다는데 아마 그시대에서 나이가 정지한 듯합니다. 그때 기준으로는 이민은 한국에서 먹고살기 힘들어 외국으로 피납식의 인식이었겠으나 지금은 많이 다른데 본인은 그 상태로 정지를 한듯합니다. 왜 이민을 온떼의 나이를 물어보면 현재의 나이와 다르게 그 사람의 사고력 나이를 알수 있다고 합니다. 외국에서 살면서는 사고가 잘 안바뀐다고 합니다. 아마 대부분의 분들이 외국인둘과의 생활보다는 현지의 한국인들문화에서 버티기 때문인듯 합니다. 그러니 본인이 가지고 온 한국의 그 시대상을 계속 지키는 거지요. 아무리 시간이 가고 나이가 먹어도 외국에 사는 한국인은 본인이 정착한 그 나이,30이든 40살이든, 그때의 한국적인 사고로 사람들과 대하고 기대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잘못된 뿌리보존 본능의 부작용일까요?
결국 그날 몇군데의 집을 보기는 했지만 우리의 컨디션을 무시한 본인의 주장으로 일관된 집을 보여주는 것으로 참 실망스러웠습니다. 도저히 거금을 주고 그 사람을 통하여 집을 사고 싶은 생각도,살 상황도 안되는 지경까지 치딛습니다. 이곳은 리얼터가 다 그런가 싶은 두려움도 있었지만, 다른 리얼터를 찾아서 연락을 하고 만나뵈니 그 분은 참 친절하시고 겸손한 분이시더군요. 결국 전의 리얼터분과는 다른 분과 집을 보고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다자고자 "그렇게 살지말라"며 막무간에로 흥분을 합니다. 한국과는 다르게 여러 부동산에서 새핑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이해를 하지만, 우리가 만나 무슨 단독 컨트랙트에 싸인을 한것도 아니고, 겨우 하루 만나본상태로 리얼터가 마음에 안맞아 바꾼다는 게 그리도 욕이 되고 저주거리가 되는지 몰랐습니다. 들어보니 이곳은 부동산 중계수수료가 판매가격의 4-5%라고 하더군요. 엄청난 액수입니다.그래서 리얼터가 그리 잘되나 봅니다. 일년에 웬만한 한두집만을 팔아도 먹고는 살수 있다는 말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처럼 반드시집을 사야하는 사람을 놓치는 것이 그리 흥분이 되었나봅니다. 본인의 욕심이 앞서서 사람이 안보인듯하지요. 지금도 살면서 집을 이사다니고 있지만 절대 만나지도, 다시 연결되고도 싶지 않은 사람입니다.
*TIP: 처음 사람은 외지에서 한국인이 친절할 거라는 기대를 하지만 사실은 거의 대부분이 전혀 다른 나라사람만도 못합니다. 기대하지말고 조심해야할 사항입니다.
옥빌의 집을 구하기 위하여는 가장 중요한게 아이들의 학교위치여서 그 인터넷으로 연락이 닿은 옥빌사시는 분에게도 물어보았더니 하시는 말씀이 애들 학교는 영어를 담당선생이 지원을 해주는 ELS가 있는 학교를 찾아야한다고 Oakville Post's Corner Public School로 가는게 맞다고 하더군요. 그 학교는 ESL선생이 있어서 영어수업을 도와준다고 하고 퍼블릭스쿨은 스쿨존에 따라 입학을 하므로 그 학교존으로 이사를 하고 등록을 해야한다고 합니다. 리얼터분도 저의 사전정보에 따라 별말을 안하시고 그 근처의 집을 찾아보았던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이곳은 전세라는 개념이 없으니 월세 아니면 집을 구매를 해야하는 두가지 옵션이 있습니다. 며칠을 보고 집을 사는것은 아무래도 아니다 싶어서 당분간은 월세로 집을 있고 집의 구매는 좀 천천히 찾아보자 했습니다. 근데 그 월세라는게 소도시라 그런지 공급도 적고, 특히 1년을 최소 단위로 해야 하더군요. 몇개의 일반주택을 오퍼를 내었지만 캐나다 신용이 없어서 안된다는 거절을 계속 당하며 몇칠을 지내는데 불안감이 점점 커지더군요. 막 이민을 온 사람의 신용이라는게 도대체 무엇인지, 1년 비용을 그럼 선불도 다 지불하겠다고 조건을 제시해도 그건 부동산법에 위배가 된다고 안된다고 합니다. 막막하더군요. 무슨 시골에 월세가 한달 2000~2500 $정도가 되더군요.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온 그 시점에 미국의 부동산파경으로 전세계가 휘청거리며 환율이 더블타기를 하던차였으니 참 시작도 힘들게 하게 됩니다.
남편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날은 점점 다가오고,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차안에 뛰어다니고, 소리지르고, 싸우고하니 누군가 성인은 아이들을 좀 챙겨야 했습니다. 또 아이들도 환경이 다르다는 걸 알았는지 막내딸은 나의 옆에서 30센티도 떨어지지를 않습니다. 혼자 그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니 맘이 아주 급하고, 다른건 모르더라도 집을 구하고 가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주변에 가능한 집을 찾고하다 , 방두개의 콘도가 나왔다고 하여 집안의 내부를 볼세도 없이 오퍼를 넣고, 겨우 겨우 며칠만에 최종 계약을 하게되었습니다. 결국 콘도지만 월 1850$에 오퍼가 받아들여져서 결국 집주소가 생겼습니다. 아. 집이라는게 이리도 감격적일 줄이야 집을 구하기가 이리도 힘들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 당시 저희가 사는 강남 삼성동의 코엑스사거리 아피트 24평이 월세 180만원 정도였던걸루 기억을 하는데 이곳은 황량한 벌판에 차없이는 아무곳도 갈수 없는 이곳이 어째서 그런 가격인지 도저히 그때도 지금도 알수가 없습니다. 결국 캐나다의 집가격이 비싼거겠지요.
총 15층 건물인 이 콘도에 우리는 그 중간의 911호이고(외우기도 쉽습니다.) 내부는 한국의 벽지같은 개념의 하얀페인트가 천장까지칠해져 있고, 바닦은 하드우드(나무)로 깔려 있습니다. 방이 두개에, 화장실이 두개, 주차장이 외부에 있고, 건물의 지하에는 각 집마다 물건을 보관할수 있는 조그마한 창고가 할당이 되어 있더군요. 콘도의 입구는 보안키가 있어야 들어올 수가 있고 일층에는 조그마한 헬스장과 사우나와 월풀이 있더군요. 집안은 삼면 모두 커다란 유리창으로 되어있어 좁은 집안이 그나마 환하게 밖을 볼수 있어 좋았습니다. 방 둘은 침대를 넣어두면 거의 공간을 다 찾지하는 작은 편이었구요.
한국에서 미리 이사짐을 붙여둔 상태인데 캐나다 도착후 바로 통관신고를 해야 한다고 하여 도착 다음날 Canada Inspection Office이라는 공항근처의 사무소에 가서 수속을 합니다. 이렇개 해야 미리 붙여서 캐나다에 도착한 이사짐의 주인이 실제 도착한것을 확인하게 되고 그후의 별도 자체 수속단계를 거쳐서 우리가 예정한 날에 이사짐을 캐나다내의 이사짐 수송업전체가 전달을 받아 향후 집을 구한 후에 전달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물건리스트 및 우리의 도착날짜등을 확인했던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거의 예상된 날짜가 짐이 도착을 하고 콘도관리인에게 엘리베이터를 사용하는 허가를 돈을 지불하고 예약을 한걸루 기억을 합니다. 도착하여 짐을 나르고 포장을 풀다보니, 열심히 포장을 했다고 했지만(포장이사임) 장식장의 유리한장이 전면 깨져 있습니다. 거의 새것으로 한 100만원이상을 준거로 기억이되는데 보상금은 유리를 바꾸라며 한 30만원을 보상해준 듯합니다. 이게 어디서하는지 모르고 비용이 워낙 비싸니 미루고하다, 그 상태로 여전히 우리집의 한구석에 있습니다.
집에 들어온지 며칠 안되어 아이들을 찍은 그때의 사진입니다. 지금과는 부쩍다른 모습인데 이 사진을 보니 저도 더불어 웃음이 나오고 그때의 그 기분과 상황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우리집이다.
콘도에 살면서 또 하나의 잊지못할 경험이 있습니다. 처음에 한밤중에 화재경보가 다들 대피하라고 방송이 나와 정말 위급한 마음으로 잠옷을 걸치고 아래층으로 계단을 통하여 대피하면서 그 추위에 밖에서 한 30분을 떨다가 어디도 연기나 불은 안보여 이상하가 왜 경보를 끄고 안들어 가나 했더니, 캐나다는 건물에서 화재경보가 나면 관리인이 있다고 해도 그 차단기를 건들 수가 없다고 합니다. 결국 911이 와서 문제여부를 확인하고나서야 화재경보기를 차단을 할수가 있다고 합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그 원인은 누군가가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고 그게 화재경보를 일으킨거라 하더군요. 한겨울, 한밤중에 잠옷만을 입고 몇번을 지상으로 대피를 한 경험은 참으로 잊지못할 기억입니다. 한두번도 아니고 거의 두세달에 한번씩 발생하는 이런 사태에 나중에는 꼭 주택에서 살아야겠다하는 마음을 갖게 한 경험입니다. 집호수가 그래서 였는지하는 생각까지 들정도로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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