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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살아내기 - 막막한 첫날 (2008년 9월 15일)

인간, 우리에게로의 여행

by 빈손..binson 2018. 1. 24.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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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9월15일, 오후 9시 30분, 밤 9시가 넘어 도착한 캐나다 온타리오의 피어슨공항의 주차장은 참 어두웠습니다. 안개까지 뿌연하게 끼어 있고 가을답지 않게 건조하지 않은 아주 축축한 밤이었습니다. 아마 날씨도 한국과는 다른 모양입니다. 4명의 한가족, 40대 중반의 남편, 40대에 막들어선 부인, 초등6학년을 중간쯤 다니다 비행기를 탄 아들, 아제 막 한국어를 말하기 시작한 5살 딸, 이렇게 4명은 이민가방 8개에 새로운 곳에서의 시작을 가급적이면 완벽히 준비하고자 하는 모든 짐을 담아 공항에 도착을 한 것입니다. 그중 두개는 당분간먹을 김치며 통조림이며 라면, 과자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일생에 캐나다라는 곳은 한 10년전 출장때 잠시 들렀던게 전부인지라 아는 바는 없었지만, 그래도 뭐 미국은 간혹 출장도 나니고 했으니 비슷하지않겠나 생각을 했었습니다, 보통은 이민전에 방문을 해야하는 기회가 있지만 워낙에 별 생각없이 갑자기 캐나다행을 결정한터라 비행기표가 구해지는 시점을 기준으로 덜컥 그냥 비행기를 타게 되었습니다. 뭐 다 사람이 사는 곳인데 하는 자신감과 뭐 이것 저것도 안되면 다시 한국으로 들어가지하는 도망을 갈 생각도 염두해두고 말입니다. 

    남들은 가족이내 형제내 초청이민이나 우학이나 그 흔한 어학연수로 타국을 찾는다는데 우리는 아는 친적이나 가족하나 없이 덜렁 남의 나라를 꼭 한국내의 다른 도시로 이사를 하듯이 그렇게 왔습니다. 한국에서 하도 이사를 많이 다녀 이력이 난걸까요? 아는 이라고는 나의 고등학교의 친구인 컴비니언스를 하는 공항에서 4시간 거리에 사는 친구가 달랑 한명입었습니다. 그것도 대학졸업후 바로 이곳으로 떠나 거의 1-2년에 한번 통화를 할까말까하는 그런상태였지요. 

    그 친구가 캐나다에 이민을 준비할때 알아서 참고를 한게 아니고 그냥 한국을 출발할 즈음에 나 거기 간다하는 말로 인사겸 안부 전화를 건게 다였읍니다. 그래도 친구는 먼나라오는 초행길이니 본인이 공항을 마중을 나온다고 하지만, 헬퍼도 안쓰고 부부가 1년 365일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한다는 걸 알고 있던 나로서는 그런 부담을 주는게 마음에 걸려 좀 지나고 연락할께 하고 사양을 했습니다. 하지만 도착해서는 잠시 너무 막막하여 그 누구라도 공항에 마중나온 사람이 었으면 얼마나 힘이 되었을까 하는 마음에 그 거절이 후회도 되더군요. 

     누군가에게 들었는지 어디서 읽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아마 그 징크스를 겪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마음의 한켠에 있었을까요? 외국으로 이민가는 사람의 운명은 공항에 마중나오는 사람들의 직업을 따라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개인사업을 하고 돈은 여유가 있겠지만 그 바쁜 하루 하루의 생활을 저는 모르는 바가 아니었기에 말입니다. 부모님이 아주 어려서부터 집에서 사업을 하다보니 하루 종일 사람들이 북적대고, 항상 울리는 전화기 소리(그 시대에 전화가 있으면 생활조사에 부자라고 써야했지요 아마), 밤이든 새벽이든 일어 나라면 그 한참 졸린 잠을 털어내고 일어나 집안일을 도와야 함은 물론 방학은 집안일을 본격적으로 돕기를 기대하는 부모님의 염원기였습니다. 방학이라고 빈둥대거나 친구들과의 여행으로 계획을 잡기에는 너무 먼 이야기였지요. 부모님 나릉의 그 이유가 그때는 우리가 이해하기는 너무 어려웠습니다. 전쟁과 함께한 세대라 그 살기 힘든 여건에서 국민학교도 제대로 못다니신 부모님이 4명의 자녀을 다 대학까지 공부를 시키신 의지며 노력을 이제 나이에는 이해가 되지만 그때는 피하고 도망가고만 싶었던 어린시절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성인이 되어서도 아직 극복하지 못하는 것중에 하나가 전화소리입니다. 들으면 웬지 피해야하고 듣다보면 불편해지기 시작하고 목소리는 마지못해 받게되어 있는데로 깔리게 되니 거의 전화기피증까지도 갖게 되었나봅니다. 이런 기본환경을 가진 나로서는 좀 다른 생활을 기대하고 오는 이민이지만 그 장사나 사업을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그런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 친구가 하루 잠을 줄여가며 공항을 마중나오는 것이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 남들의 말대로 그리될까 두려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뭔가에 끌려다니지말고 이번에는 나의 의지로 새로운 시도을 하고 싶었습니다.  

   일단은 이민자니 입출국사무소에 들어가서 몇가지 질문과 대답을 하고는 이미그레이션페이퍼를 받았습니다. 그게 중요한 문서이더군. 나중에보니, 그게 정식 서류라고 합니다. 향후에 PR카드가 나와도 그 먹지가 번진듯한 그 종이를 보관을 하고 있어여 합니다. 후에 첨부 서류로 요청을 하니까요.(시민권 수속시도 요청을 하던 걸로 기억을 합니다.) 수속을 무사히 마친 후에 아무래도 랜트카를 찾으러 가려고 한국에서 미리 예약을 해둔(뭐 이름이 알려진개 아니고 그냥 가장 싼 렌트카(Payless)였던걸로 기억을 합니다.) 랜트카 상호명의 오피스를 찾는데 그게 공항에서 나오면 사무실이 있어 보이려니 했는데,공항에서는 안보이고 공항의 주차장으로 가서 셔틀버스를 찾으라고 합니다. 짐들의 홍수 속에 아이들을 챙기고 이리 저리 찾다가 셔틀을 겨우 발견하여 차에 올라타니 휴하고 한숨이 나옵니다. 공항의 주차장으로 가서 세워있는 셔틀버스를 타고는 공항 근처의 그 랜트오피스로 가야하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이름이 있는 랜트카보다 쌋나봅니다. 한 10분정도를 셔틀을 타고가니 어느 거리의 사무실을 들어서는데 이건 사무실이라기보다는 창고같은 느낌이 들어 좀 불안하더군요. 뭐 우리를 때로 어디로 팔려보낼까, 이상한 인간이들이 우릴 어쩔려구하는 별의 별 생각이 다 났습니다. 다행이 사무소에 들어서니 좀 후지긴하지만 다른 사람도 그곳에서 차를 랜트를 하고 있는 것을 보니 랜트사무실이 맞는 듯하여 좀 안심이 되더군요. 수속은 다하고 차를 인계 받아 근처에 또 예약한 숙소인 "모텔6"라는 키친이 함께 있어 간단하나마 음식도 해먹을 수 있을 것아 당분간 집을 구하기전에 있을 곳으로 예약을 한곳으로 향했습니다. 물론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지도를 프린트 해왔으나, 그게 공항부터이지 렌트사무소가 아니니 참 당황스럽더군요. 다시 공항근처를 가서 시작을 해야하나 하다가 이리 저리 길을 찾아봅니다. 뭐 이때만 해도 스마트폰이네 하는게 없을때니 말입니다. 밤은 깊어지고, 길이름이든 상호명이든 다 낯설은 그속에서, 우리가 지금 뭐하나, 뭐하러 여기와서 이렇게 해매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찌 어찌 헤매고 하다 길거리에 턱하니 써있는 광고판이 보이고 우리는 도착을 했습니다. 체크인을 하고는 할당받은 방으로 들어가는데 아이들은 좋다고 합니다. 우리집이라고요. 복도의 그 습습한 냄세를 좋아하는 우리 딸은 좋아서 어쩔줄을 모릅니다. 아이들때문에 그 이틀간의 불안감에서 조금이나마 안정을 느낍니다. 그래 우리 이 가족이 이렇게 다 무사히 있는데 어디서 무엇을 못하겠나 힘이 납니다. 가져온 짐을 옮기고 간단히 정리하고 냉장고에 가져온 김치를 옮겨두고는 일단 급한 것을 준비하러 나갑니다.  

 

 

  간단한 먹거리로 우유, 빵도 필요하지만 가장 필요한 핸드폰과 GPS(네비게이션)을 사야합니다. 내일부터는 집이며, 차며, 애들 학교등을 알아봐야 하니까요. 남편은 우리와 함께 오기위하여 어렵게 낸 휴가 10흘 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하니까 그안에 최대한 함께 할수있는 것과 결정사항등을 정해야 합니다. 숙소에서 물어보고 들은 "베스트바이"라는 곳을 향하여 가보니 조그마한 몰단지가 보입니다. 처음 보는 상호명이 모두 너무 낯섭니다. 이게 마트인지 은행인지,들어가보지 않으면 전혀 모르겟습니다. 꼭 중고등학교를 안나오고 대학을 간듯한 느낌입니다. 막연히 미국과 비슷하겟지 기대를 했는데, 사실 너무 다르다는게 그때도, 그 이후 9년간 사는 내내도 실감을 합니다. 같은 북미인데 이토록 다를까요? 커피를 한잔 먹고 싶은데 그 흔한 커피숍인 스타벅스도 없습니다. 아마 다른 이름이겠지만 눈에 선뜻 들어오지 않으니 답답합니다. 

   우린 너무 준비도 없이 그냥 훌쩍 친구집 놀러오 듯 와 버린겁니다. 다행히 베스트바이는 미국에서도 출장중에 본적이 있는 회사명이라 들어가니 그게 뭐라고 마음이 좀 놓였습니다. 한국식으로 네비게이션을 아무리 말해도 못 알아듣습니다. 발음이 문제인가 뭐가 문제인가하다 기능을 설명하니 "GPS!"하더니 그 장소를 알려줍니다. 이곳은 GPS라고만 하야 알아듯지 네비게이션은 아닌가봅니다. 핸드폰도 아니니 정식명인 "Celluar phone"이라고 해야지 하는데 그것도 안먹힙니다. 나중에 보니 "Cell Phone"이라 해야 합니다. 영어을 다시 배워야 하나 봅니다. 젊은 나이에 어학연수를 못한 탓인가요? 대학을 헛 나왔나요? 우리나라의 교육이 문제인가요? 어렵게 힘들게 마지막 기운까지 꺼내서 GPS를 사고 근처에 나와 핸드폰을 가입했습니다. 두가지를 하고나니 마음이 다 든든하기까지 하더군요. 참 인간이 간사하지요. 

   간단히 먹을 것과 함께 숙소로 들어와서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침대에 누우니 한국과의 시차로 정신은 더욱 말짱 말짱해집니다. 내일은 집을 보러다녀야하니 중개인도 만나야하고 할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자야하는데 이생각 저생각에 참으로 밤이 길었더랬습니다. 내일은 좀 나아지겟지지하며 잠을 청해봅니다.    

*TIP: 이제와서 생각을 해보니 아는 분이 저희같이 없으시면,물론 정보도 찾기가 힘드니, 이럴 경우 가장 먼저 한국음식점이나 마트를 찾아가서 그곳에 베치가 되어 있는 한국신문을 참조하는게 좋을 방법인 듯합니다. 여러 부동산 정보며 차량등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괜히 교회니 사람을 찾으면 정보가 객관적이기 보다는 지극히 주관적으로 가고 나중에 속았다느니 뭐니하면 처음만난 사람과 관계가 불편해지는 걸루 해외의 생활이 시작되면 좋지 않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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