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청소를 하려 들어간 딸아이의 책상위의 벽에 뭔가 알록 달록한게 붙어 있어 쳐다 봅니다. 사춘기가 되면서 자기방에 남이(이시기의 그들에게 부모도 남으로 받아들여져서 그 가족이라는 개념과 자기가 아닌 모든 이는 남이라는 개념에 헤매는 단계인 듯 합니다.) 들어가는 것도 별로 안좋아하고 그렇다고 본인의 방을 깨끗이 정리도 못하는 아이도, 어른도 아닌 중간단계입니다.
문을 여는 순간부터 어디에 발을 디딜지 고민스러운 상태입니다. 뱀띠도 아닌 것이 뱀의 허물벗듣이 한겹씩 한겹씩 벗어둔 모든 종류의 옷가지들이 한 뭉탱이씩 돌아다닙니다. 아마 하루 하루의 기록인가 봅니다. 한번은 그것을 다 치우고 정리를 해둔 후에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방으로 들어간뒤에 청소와 정리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기를 기대했지만 그 아이의 반응은 참 의외입니다.
자기가 다음에 입을 옷을 잘 구분해두고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는데 내가 치우는 바람에 다 망쳐놨다는 겁니다. 본인의 설명으로는 옷을 입기 편하게 바닦에 늘여 놓고 그날의 기분에 따라 골라 입는다는 설명이더군요. 내가 치우는 바람에 옷들이 섞어져서 입은 옷과 안입은 옷이 뒤적박적되었다고 나를 원망합니다. 아..그런 의미도 있었군요. 그 이후로는 되도록이면(다행스럽게) 그애 방은 우리 집의 치외법권같은 별도의 본인 소유처럼 건들이지 않고 따로 놓기로 했습니다. 알아서 치우고 싶을때 치우도록, 다행히 전 별로 집을 치우는데 열정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서로 그 정도에서 합의(?)가 이루어 진겁니다.
이 날은 그걸 잠깐 잊고 방문을 열다가 그 계획표를 본것입니다. 놀랍더군요.
그 아이 4살에 외국에 와서 한국식의 교육을 받지 않아 그런 표를 만들 줄은 몰랐습니다. 내가 따로 만들라고 알려주거나 설명한 적이 없으니, 아마 요새 열심히 보는 어느 아이돌이 나오는 한국드라마에서 본게 아닐까합니다. 그렇게 한국말을 가르키려고 했는데도 안듣더니 본인이 KPOP에 빠지고 자연스레 아이돌이 나오는 드라마를 보다가는 한국말을 아주 잘 익힙니다. 외국인의 그 어눌한 영어식 한국말의 액센트도 없어지더군요. 아이들의 배움은 참 대단합니다. 주변의 친구들도 비슷하여, 일본에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친구는 일본어를 아주 잘한다고 합니다. 그 나이의 아이들은 마음만 먹으면 되나 봅니다. 우리는 특별한 능력자가 아닌한 언어앞에 언제나 한없이 작아지는 데 말입니다. 한번은 약속이 있어 집을 나서며 점심을 차려놓고 집으로 돌아오면 먹으라 텍스트를 보내놨는데 나중에 응답이 왔습니다. "엄마, 이거 엄마가 만들었어? 비쥬얼 겁나게 안좋아."
캐나다의 학창시절은 초등학생(Public School)이나 고등학생(High school)이나 다 거의 같은 패턴의 수업시간을 가집니다. 중학교(Middle School)이 따로 없고 초등과 고등에 그 학습년도를 포함시켜 초등학교는 8년을, 고등학교는 4년을 다니고는 대학으로 갑니다.초등학교는 아침 8시45분까지 학교에 가서 9시에 시작을하고 오후 3시 15분에 끝나서 집으로 오면 3시 30분정도가 됩니다. 고등학교는 8시 30분에 시작을 하여 2시 45분에 끝나 집으로 오면 3시경이 되고요. 생각해보니 너무 함께 끝나면 스쿨버스니 교통이 나름 복잡함을 배려하여 트랙픽을 나누고자 30분의 차이를 둔게 아닌가 나름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니 딸내미의 하루 일정표에 3시에 집에 오는 것으로 표시되고 그 내용이 특이합니다. "학교 리뷰"? 음..좀 생각을 해보니 딸이 오면 점심겸 저녁으로 함께 밥을 먹는데 그 와중에 딸의 수업, 선생님, 친구등 학교생활에 대하여 이야기한 것을 본인의 표현으로 그리 표현한건가 봅니다. 먹는 속도가 아주 느려서인지 한시간은 족히 넘게 걸립니다. 친구들과 먹는 속도가 너무 달라 점심으로 도시락을 싸주어도 거의 반 이상을, 어느 경우는 전부 집으로 그냥 가져오기가 일수 입니다. 한국에서의 익숙한 빠른 속도로 난 5분이면 끝내고 딸아이는 한시간을 씹고 있으니 몸에 좋다고는 하지만 다 먹고 그 앞에 앉아 있기는 좀 고단할때도 있더군요. 나도 더 씹어보자 하지만 그게 이상하게 씹다보면 씹을게 입에 없네요. 그것도 쉽지는 않더군요. 딸이라서인지 아님 나름의 철이 들어서인지 엄마에게 놀아주는 시간으로 여러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니 한시간이 두시간으로, 그럼에도 밥을 보면 아직 반도 안먹은게 보통이네요.
다음에는 거창하게 "집공부"라는 테마가 보입니다. 초등학교때는 안보이던 공부에 대한 의무감이 좀 드는가 봅니다. 나의 규칙 아닌 규칙이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안하는 겁니다. 학창시절에 공부를 하면서 힘들었던 그 느낌이 항상 있던지라 본인이 하고자하는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일찍 알게된 때문이기도 합니다. 학창시절 자기방이니 공부방이니 하는게 없던 시대에, 한방에서 언니와 여동생이 함께 살았습니다. 유일한 나의 공간이라고는 문을 뺀 나머지 세벽을 나누어 각가 한면씩을 갖고 장식을 하던게 생각이 납니다. 시험때가 되면 좁은 방안에 변변한 책상은 아니지만 두개가 최대한이고, 사람은 세명이니 나는 그 당시 흔하던 이동식 밥상을 가져다 앉아 공부를 했습니다. 여동생은 중학교에, 언니는 고등학교를 나와 함께 다니던 차라 시험기간이 거의 비슷하니 시험도 비슷하게 시작하여 시험공부도 거의 함께 합니다. 언니와 동생은 책상에 앉으면 한 한시간 뒤에는 조느라 책상이 부딪지는 소리가 납니다. 참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긴장감이나 불안감도 없이 저리 맘편하게 졸음이 올까, 소리가 점점 커지고 부딪치는 속도도 더 빨라지며 더 잦아집니다. 머리를 다칠까봐 수건을 책상에 깔아주면 그 소리에 잠을 깨면서 나에게 한시간 후에 깨워 달라고 합니다. 물론 깨어주고 함께 공부를 하기를 기대하지만, 몇번을 해보니 소용이 없더군요. 나중에는 나의 감정이입까지 작동을 하여, 얼마나 힘들까싶어 감히 깨지를 못하게 되었습니다. 본인들은 곤히 잘 자고는, 나는 아마 아침에 원망을 많이 들었던 걸로 기억을 합니다.
학생이 공부를 하는 것을 성인이 보면(우리 모두 그시절을 겪었음에도) 별거 아닌 공부만을 하면 되는데 뭐가 힘드냐하지만 사실 그 나이 또래에는 처음으로 겪는 자기와의 전쟁인듯 싶습니다. 하고 싶은 것, 본인이 공부외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접어가면 시간과 욕망과 유혹과의 싸움이니 말입니다. 그걸 견디게 해주는 유일한게 스스로의 동기나 의지인데 그걸 누군가가 (특히 부모가) 공부를 강요 하면, 상대적인 반항의 시기에 그걸 명분삼아 그래서 하기싫고 하는 자기 스스로의 변명에 들어가기 쉽습니다. 스스로 공부를 안함으로 느껴야 하는 죄책감을 남에게 돌리는 식으로 감추는 듯합니다. 계속 그런 변명거리를 찾게 되고 그러다 학창시절이 지나가는 겁니다. 자기의 변명과 죄책감을 밑바닥의 담고 말입니다. 아마 우리 모두가 시험공주를 하려면 감기가 걸려 아프거나 시험을 보려면 갑가지 배가 아프거나 하는 경험을 한번은 했을겁니다. 이렇듯 이시기의 아이들에게는 공부외의 걸림돌이 참 많을 때이지요. 모든이에게는 각자의 힘든 게 제일 힘든 거 같습니다. 그게 공부이든, 나이가 들어 직장생활이든, 더 나이가 들어 혼자가 되어서 그 많은 시간을 혼자보내는 외로움이든. 학생이 공부를 해야하는 이유야 사실 몇개지만, 다른 것을 하고 싶은건 수십가지가 될겁니다. 이를 스스로가 이겨나가기 위하여는 스스로의 공부를 해야하는 이유를 찾으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면 해야 한다라는 의무감이라도 본인이 가져야 효과가 크다는 말입니다. 처음으로 갖는 본인 스스로와의 싸움이 되겠지요.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으니 최근에는 딸에게 이런 원망도 들었습니다. 자기가 생각을 해보니 엄마의 이 너그러움이 자신에게 안좋은 것 같다고 합니다. 초등에서 공부를 하란 소리를 듣고 공부한 친구들이 자기보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면서 어린 자신에게 공부를 하도록 선택하는 것은 안 맞은것 같다고 하더군요. 하기 싫어도 억지로라도 시켰어야하는게 아니냐고 항의를 합니다. 고등학교를 가니 공부가 예전과 너무 틀려서 본인이 당화스럽다고도 하더군요. 아마 그런 이유로 더 이상 엄마를 못믿어 이런 일정표를 만들어 스스로 하기로 한건가 봅니다. 딸의 항의와는 다르게 저는 드디어 제 의도한바로 가는게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이런 저런 생각중에 나의 신조는 자식의 교육은 열심히 사는 부모들 스스로의 모습을 보여주는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우리 부모님에게 배운듯이 말입니다. 부모 본인을 위하여서든지, 자기 아이들을 위해서든, 다른 무언가를 배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아이들에게 나는 못했으니 너는 그러지 말라고하면서 강요을 하지 말고 말입니다. 배우고 실수하고 인정하고 사과하며 함께하는 진솔함을 보이고 공유를 해야 할듯합니다. 농담으로 그런말이 있습니다. 10대는 1학년, 50대는 5학년...맞는 말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아직도 더 배워야하는 학생인 것입니다. 이제 1학년인 딸아이와 5학년인 내가 이렇게 하루 하루를 만들어가며 삽니다. 가야 할길이 아직도 멉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더 어른들이 말씀하신 와닿습니다. "태어나면 지 먹을 것을 갖고 난다"하는 말입니다. 모처럼 의욕의 부려서 만든 딸아이의 일일 계획표에 보니 시간의 개념이 좀 약한 듯합니다. 완전히 본인의 시간만을 생각했지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것을 표기하지 않은게 이해부족일까요 아님 일부러 간단히 표기를 그리 한걸까요. 이걸 말하면 일기장을 본후에 잘 잘못을 지적하는 꼴이 될까요? 좀 고민을 해봐야겠습니다. 괜히 의욕을 꺽지 않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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