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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창세기 샤갈이 그림으로 말하다

인간, 우리에게로의 여행

by 빈손..binson 2018. 2. 1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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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적이면서 또한 시적인 잠수성을 지닌 화가인 샤갈은 자신의 종교적 예술세계를 종합하는 의미를 지닌 [성서 메세지] 연작을 1955년도에서 1967년도에 걸쳐 작업을 했다. 68세에서 80세에 해당하는 나이였다. 이때는 샤갈의 작품 활동기에서 후반에 해당하다고 할 수 있다. 샤갈은 우대인 태생의 우대주의 종합예술가로서의 양상들을 보여준다. 샤걀은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신인으로 인식되기를 원했다. 헨리 밀어는 샤살을 '화가의 날개를 가진 시인'이라고 묘사하였다고 한다.  

  샤갈은 이 그림을 천사와 인간으로 상정을 했다.창세기에 의하면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그러나 이 그림에서는 신의 모습 대신 천사만 등장을 한다. 유대교에서는 신을 그림이나 동상으로 표시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천사로 표시를 한것이다.이것은 유대인의 예술형식에 있어서 꼭 지켜야할 원칙이다.그 대신 신의 미션을 가지고 천사가 이 세상에 내려왓다. 천사는 원래의 기능대로 신의 말이나 행동을 이 땅에 전달하는 메신저 이다.그래서 '천사'를 히브리어로 '말락'이라 하는데, 그 의미는 전령이다. 


이 그림에서 샤갈이 생각하는 파라다이스는 파란색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신,인간,동물 그리고 자연이 모두 하나이다.에던동산의 중앙에는 '모든 지식의 나무' 즉,그것의 열매를 먹으면 '신과 같이 되는'나무가 잇다.선악을 알게 하는 모든 지식의 나무는 우주의 중심이다.그 나무를 영험한 동물인 뱁이 지키고 있다. 고대 오리엔트세계와 지중ㅎ 세계에서 뱁은 지식의 동물이며 영생의 동물이다. 예를 들어 인류 최초의 서사시인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길가메시가 영생을 얻으려고 고생 끝에 찾아가 불멸의 과일을 찾지만 결국 뱀이 먹고 만다. 신화에서 뱀은 우루보소스인데 처음과 끝인 알파와 오메가가 하나인 영생의 동물이다. 

  아담과 이브가 흰색으로 표현이 된것은 영적인 존재를 의미한다."에던 동산, 아담과 이브의 파라다이스"에서 흥미로운 것은 우측 중앙에 존재하는 아담과 이브는 서로를 기반으로 차별성을 인지하지 않는 미분화상태의 인간의 존재들을 표현하고 있다. 이들은 애착의 상태에서 서로의 구분이 없는 이상적인 인간의 짝으로 묘사되었다. 

  인간은 이미 '지식' 나무의 열매를 먹었기때문에 인간이 이미 신처럼 되었다는 것이다.신처럼되었다는 사실은 인간이 유한한 삶을 살지만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 그런 영적인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그림은 세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중앙에는 날개를 단 천사의 모습이 있고,왼편으로는 '모든 지식의 나무'가 있고, 천사의 오른 편에는 아단과 이브가 어딘가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 특이한 점은 소위 실락원의 장몀에서 다른 우대한 예술가의 그림처럼 아담과 이브가 괴로워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아담과 이브는 마치 소풍을 가는 사람처럼 마음이 들떠 바깥 세상으로 나가려하고 있고, 가운데 있는 날개달린 천사는 가지 말라고 손짓을 하는 모양이다.   

인간은 유한한 삶을 살면서 그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본성을 타고난 것이다. '아담' 즉 '인간'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흙이라는 뜻이다. 

그림전체는 파란색 톤이다. 파란색은 샤살의 성서 그림에서 희망과 긍정의 색이다. 그림 중앙에서 노아가 비둘기를 날리는 모습으로 시작을 한다. 왼손으로는 흰색 황소를 쓰다듬고 있고 오름손으로는 비들기를 날린다. 그림의 왼편에는 여러 종류의 동물들,특히 흰색과 노란색 동물이 눈에 뛴다. 노아 위쪽에는 방주가 잇고, 방주 오른쪽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성서에서는 노아와 노아의 아내, 노아의 세 아들과 그 자부들, 이렇게 8명이 나오는데, 샤갈은 그런 숫자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방주의 왼쪽에는 상상의 동물과 같은 공작새가 오색 창연한 꼬리를 뽐내고 있고, 그 옆으로는 사다리가 보인다. 사다리 중간에는 비둘기가 보이고, 맨위에서는 천사가 뮤언가를 감사 안으려 한다.  

무지개 아래에서는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숫양이 어떤 의식을 행하려고 하고 있다. 홍수사건이 이 이후에 바로 등장하는 아브라함을 예시적으로 펴현을 했다.아브라함과 이삭 바로 옆에는 아브라함이 우르와 하람에서 데리고 나온 친척들이 이들의 예배의식을 응원하고 있다. 그림 오른편에는 아담과 이브, 그 뒤로는 유니콘, 생몀의 나무가 보인다. 아담과 이브는 앞으로 일어날 노아 방주사건, 아브라함과 이삭 사건을 서로 대화하고 있다. '노아와 무지개'는 '노아의 방주'와 유사한 주제를 표현한다. 무지개로 표현된 하얀 물줄기는 '노아의 방주'에 등장했던 두 갈래로 난 두 광원의 흐름들과 유사하다. 샤갈은 무지개가 서로 떨어진 지역을 연결시키는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표현을 했다. 무지개는 화면의 우편으로 확장되어, 아담과 이브이후로 상실했던 파라다이스를 회복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기원전 20세기에 신이 갑자기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다.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신의 형상을 만드는 '테라'의 아들로, 당시의 최고의 부자집아들이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모든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이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고 명령을 했으니, 그 명령이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과감히 떠났다. 여기서 떠났다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할락'이다.이 단어는 '가다'라는 이미도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매일 매일 그런 삶을 살앗다'를 의미한다. 영어에 'walks of life'라는 표현이 있는데, 그 의미는 일상의 삶을 의미한다.  

세 천사가 아브라함을 찾아온 사건은 이스라엘의 신앙역사에서 특별한 사건이다. 이 방문을 통해 불임여성인 사라가 아들 '이삭'을 임신하게 될 것라는 약속을 받기때문이다. 

그림 상단에 상수리나무 숲이 보인다. 상수리나무 숲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특별한 의식을 지내던 공간이다.오름편의 원안에는 세 천사가 아브라함을 부추켜 걷는 모습이 담겨있다. 이 장면은 창세기 19장에 등장하는 소둠과 고모라의 멸망사간을 예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브라함은 이들이 신적인 존재였기 때문이 아니라, 사막을 걷다 지쳐 자기집을 찾아온 낯선자이기 때문에 이들을 대접했다. 이 에피소드를 통해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가 80세임에도 불구하고 신의 선물로 아들 이삭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는다. 이러한 선물은 바로 낯선자를 정성껏 모실 때 부여된다.    

샤갈은 이 그림의 핵심을 이삭으로만 상정을 한다. 이삭의 모습을 가만히 보면, 이전 "인간의 창조"의 아담과 닮았고, "야곱이 꿈"에서 사다리 위에 있는 천사의 모습과 닮았다. 이 그림의 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창세기 22장의 사건은 '아브라함의 시험'이 아니고 '이삭의 (자발적인) 희생'이다. 이 당시의 아브라함의 나이는 127-147세 였고,  이삭의 나이는 27-47세 사이로 추정이 된다.  

상단의 부분에는 천사의 모습을 한 존재가 몸을 완젼히 젖힌채로 사다리 위에 가로로 누워 있다. 이 그림의 핵심은 바로 이 천사의 모습이다. 

야곱은 꿈에서 하늘이 땅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사다리의 상징을 통해 깨닫는다. 사다리는 땅에서 출발하지만 하늘 꼭대기에 이를때 하늘과 땅이 하나된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이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 이 땅에 와서 그 진리를 전파하다 살해당한 천사의 존재를 왜곡도니 천사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그 천상의 존재의 옆구리를 관통하여 살해 당한 모습이다. 샤갈은 이 살해단한 천상의 존재를 십자기가 매달린 예수, 혹은 홀로코스트때문에 살해당한 수 많은 유대인으로 생각을 했다. 오른편에 있는 천사의 흰색날개 위에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가 옆으로 비스듬히 그려져 있다.    

 중앙에는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씨름 이라기보다는 신에게 새로운 사명을 부여받는 장면같다. 야곱은 천사에게 자기를 축복해달라고 요구하고, 천사는 야곱을 축복한다. '축복'이라는 단어에 히브리어로 '무릎을 꿇고 순종하다'라는 의미가 있는데, 샤갈은 이 그림에서 천사와 야곱이 싸우는 장면이 아닌 '무릎을 꿇고 축복을 받은 야곱'을 그린것 같다.   

  [모세와 타오르는 가시덤불]

이 그림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오른편은 모세가 호렙산에서 가시 떨기나무를 만나는 장면이고, 왼편은 모세가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갈대바다를 전너 십계명을 받는 장면이다. 오른편의 모세는 손과 뿔을 제외하고는 온통 흰색이다. 그 뒤쪽으로는 모세의 생업을 상징하는 양들이 있다. 모세는 관조하는 듯한 표정으로 불타는 가시덤불을 보고 있다.불타는 가시덤불 위에는 여러 색깔의 원이 그랴져 잇고 그 안에 천사를 맞이하는 모세의 모습이 보인다. 모세는 샌들을 벗었다. 신발을 벗는 행위는 신을 존경하는 표시이며, 신의 공간안에 들어 왔다는 표시이다. 모세는 불이 붙었지만 타지않는 광경을 보고 있다.  

[[바위산 두드리기]

이 그림의 중심은 중앙 상단에 위치한 모세이다.이미 신을 만났기 때문에 그의 머리에는 신성을 상징하는 빛과 같은 ㅜㄹ이 나 있다. 모세 뒤로 보이는 양 떼는 과거 모세가 양치기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양 떼 위에서는 천사가 나팔을 불고 있다.이 천사는 샤갈의 그림에서 특별한 사건이 잇을때마다 등장한다. 모세가 오른손에 지팡이를 들고 바위를 치니,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막에서 그렇게 원하던 샘물이 솟구쳐 나온다. 샤살은 유목민들을 자유스럽게 표현했다. 물통을 들고 물을 받는 사람,기뻐서 춤을 추는 사람, 심지어 양들도 여러마리 보인다. 그림의 상단 왼편에 십계명을 들고 있는 모세가 보인다. 십계명을 받고 이제 이스라엘 사람들과 광야생활을 하는데,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사람들이 모세에게 광야생활에 대해 지속적으로 불평을 쏟아 놓기 때문이다.그래서 모세의 표정이 이전 십계명을 받을 때처럼 밝지 않고 자못 심각한 것 같다.   

  이 그림은 모세가 구름 속에서 손만 나온 신으로부터 십계명을 받는 장면이다. 모세와 신이 사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 그림에서 모세의 모습은 샤갈의 다름 그림에 등장하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생명나무나 돌계단 혹은 십자가의 이미지와 같다. 모세는 전체적으로 흰색으로 표시되어 있다.특히 4개의 뿔을 가지고 있는,거의 신격화된 모습이다. 모세의 역활은 이스라엘 신이 바라는 것을 이스라엘 사람에게 전달하는 자로,나중에 등장하는 '대언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대언자의 역활은 심의 뜻을 가감 없이 인간들에게 전달하는 전령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신의 계명을 받아 인간에게 전달하는 모세의 모습은 나중에 즈앙라는 대언자들의 원형이 된다. 


"누워 있는 시인"은 샤갈의 작품들 가운대서 특별한 작품이다. 이 그림에서 샤살은 예외적으로 혼자 등장한다. 샤살은 자신이 속한 환경으로부터 경험하는 고립감을 내면으로 침잠하는 시적인 감수성을 통해 구현한다. 존재함과 관련되는 정서적인 깊이가 있는 작품으로 볼 수 잇다. 그리고 그림에 나타난 비텝스크의 집들은 그가 고향에 관해 지니는 감정들을 표상한다. 이 그림은 샤갈이 1915년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렸다.   

   


                                                                                  -출처: [창세기 샤갈이 그림으로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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